역사는 흔히 거대한 물리적 기념비로 기록되지만, 시민들의 실제 일상은 그보다 훨씬 미시적인 공간의 기억에 기대어 흘러간다. 1968년 12월 23일 남산공원에 처음 개원하여 약 38년 동안 서울의 상징적 랜드마크이자 서민들의 따뜻한 쉼터 역할을 수행했던 구 남산식물원은 바로 그러한 미시적 기억이 촘촘히 응축된 현대사적 중심지였다. 당시 서울은 급격한 산업화와 무분별한 도시 개발 속에서 회색빛 콘크리트로 변해가고 있었고, 남산의 푸른 숲속에 들어선 유리 온실 식물원은 시민들에게 숨을 쉴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오아시스이자 삶의 윤활유였다. 주말마다 몰려드는 인파로 입구가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며, 수많은 이들이 유리 돔 아래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다. 그러나 2006년 10월, 이 친숙한 공간은 시설 노후화와 서울성곽 복원 사업이라는 거시적 명분 아래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국가가 지향하는 공식적인 역사적 정화 작업과 시민들이 영위하던 일상적 삶의 보존이 정면으로 충돌한 현장이 바로 남산식물원이었다. 우리는 이 공간의 소멸과 재편 과정을 통하여 도시가 기억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사라진 유리 돔, 그리고 봉인된 역사의 지층
1968년 개원할 당시 남산식물원은 단순한 식물 전시 공간을 넘어선 곳이었다. 특히 1971년 재일교포 김용진 씨가 평생 동안 세계 각지에서 정성껏 수집한 선인장류를 비롯한 식물 208종 1만 7,800여 본을 고국의 남산식물원에 아낌없이 기증하면서 식물원의 규모는 획기적으로 확장되었다. 이는 타향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던 재일교포의 깊은 애국심이 담긴 헌신이었으며, 기증된 식물들을 수용하기 위해 대규모 온실 관들이 차례로 증축되었다. 이를 계기로 식물원은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온실 중 하나로 꼽히며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게르 모양의 독특한 돔 지붕을 지닌 유리 온실 건물과 시원하게 물을 뿜어내던 분수대, 그리고 그 주변에 조성된 소동물원은 당시 서울 시민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낙원이자 최고의 휴식처였다.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남산식물원은 소풍, 데이트, 가족 나들이를 위한 대표적 명소로 자리 잡으며 현대 시민 생활사의 핵심적인 무대가 되었다.
그러나 식물원이 서 있던 물리적 토지는 훨씬 더 복잡하고 어두운 역사의 지층을 품고 있었다. 식물원이 있었던 자리는 단순한 흙바닥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의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성곽을 훼손하고 식민 통치 상징물로 지었던 '조선신궁'의 배전 터와 방공호 등이 깊게 묻혀 있던 곳이었다. 즉, 남산식물원은 일제가 남긴 쓰라린 식민 지배의 상흔 위에 세워진 현대적 유희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이 기묘한 공존은 한양도성 복원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마침내 종식을 고했다. 서울시는 조선 시대 한양도성 복원과 조선신궁이라는 일제 강점기 상흔 제거를 핵심 명분으로 삼아 2006년 10월 식물원의 폐쇄 및 철거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38년 동안 시민들의 안식처였던 공간은 백범광장 및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인근의 기억 속으로 강제로 편입되었다. 역사적 흉터를 지우는 동시에 생활의 흔적도 함께 지워진 셈이다.
국가의 역사 정화와 시민의 생활사 보존의 충돌
식물원의 철거 결정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관의 격렬한 격돌이었다. 서울시는 성곽 복원과 일제 강점기의 상흔 청산을 앞세우며 철거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이는 국가적 정체성을 바로잡고 민족의 역사적 정기를 세운다는 거시적 명분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에게 남산식물원은 일제의 상흔보다는 자신들의 유년 시절과 청춘의 기억이 응축된 친숙하고 소중한 삶의 터전이었다. 시민들에게는 국가적 상징보다 일상의 흔적이 훨씬 소중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철거 집행 전후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공간이 물리적으로 완전히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끊임없이 표출되고 있다.
당시 여론과 커뮤니티 정서는 이러한 상상력 없는 철거에 대한 아쉬움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사라진 공간에 대한 시민들의 애정 어린 추억은 다음과 같은 목소리로 대변된다.
"독특한 게르 모양의 돔 지붕 온실과 분수대, 그리고 주변 소동물원이 어우러졌던 남산식물원은 그 시절의 독특한 현대사적 정취를 담은 공간이었다. 우리의 어린 시절 기억이 깃든 친숙한 장소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은 못내 아쉽다."
이처럼 국가가 추진하는 공식적 역사 복원과 시민들이 체감하는 현대 생활사 보존 사이의 정서적 대립은 도시 재생의 과정에서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역사의 정화가 일상의 지우개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더욱이 철거 당시 식물원에 있던 수많은 식물과 동물들이 서울대공원이나 어린이대공원 등의 온실 및 동물 시설로 이전되거나 일부 식물 및 조류가 시내 학교에 기증되었다고 발표되었으나, 정작 이식된 특수 식물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고사하지 않고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에 대한 상세한 추적 정보는 어디에도 없다. 기증자의 헌신과 식물의 생명권마저도 행정적 이전이라는 명목 하에 잊힌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오인된 기억을 넘어 한국 숲 정원의 시대로
우리가 기억을 다루는 과정에서 범하는 흔한 오류 중 하나는 위치와 명칭의 혼동이다. 2006년 완전히 철거되어 사라진 구 남산식물원(백범광장 및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인근에 위치했던 온실 형태 식물원)과 한남동 외인아파트 철거 자리에 1997년 조성된 '남산 야외식물원'은 전혀 다른 별개의 공간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과거 온실 식물원이 아직도 남산 한구석에 남아 있는 것으로 오해하거나 두 장소를 동일한 시설로 간주하곤 한다. 이 같은 기억의 왜곡은 도시 공간의 변천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다. 사라진 온실 식물원은 역사 속으로 영영 퇴장했음을 직시해야 한다.
반면, 한남동의 남산 야외식물원 구역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변모를 이룩했다. 해당 구역은 2026년 6월 27일, 전통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남산 한국 숲 정원(Korean Forest Garden - 한국 전통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조성한 야외 정원)으로 새단장하여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되었다. 지당원, 이끼원, 숲속 맨발길 등 한국적인 경관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이 공간에 대해 시민들은 산책과 힐링의 새로운 명소로 받아들이며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과거의 온실 식물원이 인공적인 유리 돔 안에서 수입 열대 식물을 보여주는 근대적 전시 방식을 취했다면, 오늘날의 한국 숲 정원은 야외에서 자연과 전통의 미학을 호흡하는 생태적 공간으로 진화한 것이다. 기억은 단순히 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새로운 공간의 형태로 계승되고 재해석되는 과정임을 이 정원이 몸소 증명하고 있다. 우리가 앞으로 가꾸어나가야 할 도시의 모습도 바로 이와 같은 유기적이고 자연스러운 기억의 순환이어야 한다.
핵심 요약
- 1968년 개원한 구 남산식물원은 2006년 한양도성 복원 사업을 위해 철거되었으며, 그 부지는 일제강점기 조선신궁의 배전 터와 방공호가 묻혀 있던 곳이다.
- 식물원 철거는 역사 정화라는 국가적 명분과 38년간 축적된 시민들의 일상적 기억 보존이라는 정서적 가치가 충돌했던 사건이다.
- 2006년 철거된 온실 형태의 구 남산식물원과 달리, 1997년 조성된 한남동 야외식물원은 2026년 6월 27일 남산 한국숲정원으로 새단장하여 개방되었다.

공부를 위한 self-FAQ
A: 전혀 다른 공간이다. 2006년 철거된 구 남산식물원은 백범광장 및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인근에 있던 온실 형태의 식물원이며, 현재의 남산 야외식물원은 한남동 외인아파트 철거 자리에 1997년에 조성된 야외 공원 형태의 식물원이다. 두 곳은 위치도 형태도 완전히 별개인 시설이지만, 명칭과 위치의 유사성 때문에 동일한 곳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A: 그렇다. 구 남산식물원이 있었던 자리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가 성곽을 훼손하고 식민 통치 상징물로 삼았던 '조선신궁'의 배전 터 및 방공호 등이 묻혀 있던 역사적 흔적의 토지였다. 서울시가 2006년 식물원 철거를 추진한 결정적인 명분 역시 바로 이 일제강점기의 상흔을 제거하고 조선 시대 한양도성을 복원하기 위함이었다.
A: 공식적으로는 서울대공원과 어린이대공원의 온실 시설로 이전되었으며, 일부 식물 및 조류는 시내 학교에 기증되어 자연 학습 자료로 처리되었다. 그러나 기증받았던 선인장류를 비롯한 수많은 희귀 식물들이 이식된 후에 새로운 환경에서 적절하게 유지 및 관리되었는지, 혹은 고사하지 않고 생존해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추적 정보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참고 자료 및 연구 출처
최신 뉴스 동향 (News)
- 남산에 한국의 미학 담은 녹색공간 '한국 숲 정원' 만든다 (https://www.yna.co.kr/view/AKR20250421156700004)
서울시가 남산 야외식물원을 한국의 전통 미학과 생태 요소를 결합한 한국 숲 정원으로 새단장하여 개장한다는 계획을 전했다. - 남산에 이런 곳이? 자연과 전통정원이 어우러진 '한국숲정원' 생겼다!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2018599)
한남동 야외식물원이 전통 미학을 재해석한 11개 테마의 남산 한국숲정원으로 재단장되어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는 내용이다. - 추억으로 사라지는 '남산 식물원'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22941)
1968년 개원하여 서울 시민들의 명소로 큰 사랑을 받았던 남산식물원이 2006년 철거되는 과정과 그에 얽힌 아쉬운 소회를 보도했다.
추천 도서 및 심층 분석 (Recommended Books)
- 서울역사답사기 5: 남산 일대 (서울역사편찬원, 2021)
남산의 한양도성부터 조선시대 풍류, 일제강점기 식민 통치 거점, 현대사의 권력 공간에 이르기까지 남산 일대의 역사적 변천사를 입체적으로 서술한 답사기다. - 역사가 살아있는 남산 이야기 (최준식, 2012)
남산 곳곳에 숨겨진 역사와 문화 유적을 일반인의 시선에 맞춰 상세하고 알기 쉽게 풀어낸 역사 교양서다.
추가 조사 추천 검색어
- 남산 한국숲정원 개장 후기
- 남산식물원 철거 성곽 복원 2006
- 김용진 선인장 기증 남산식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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